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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당신 뜻대로 살아질 것 같아?" 생의 중심을 흐르는 농담

박완서 소설의 오랜 축은 자본주의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이다. 허위와 위선을 꼬집어냈던 그는 이 소설에서 돈과 결탁한 인성 속에서의 권력과 눈가림, 그 속에서 태어나는 상처와 고통을 더욱 극단적이면서도 현실적인 중심을 잃지 않는 필체로 그려내고 있다.

''환자는 자기 몸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생명의 시한까지도에 대해 주치의가 알고 있는 것만큼은 알 권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의사와, 가족애를 빙자하여 진실을 은폐하려는 가족과, 그것을 옹호하는 사회적 통념과의 갈등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소설을 통해 작가가 궁극적으로 말하고 싶은 것은 자본주의에 대해서이다.'' 여기까지 읽다가 피식 웃음이 나면서 뭘 자본주의씩이나 적나라하게 그냥 돈으로 했으면 좋았을 것을, 하는 생각이 들었다.(__작가의 말 중에서)

자본주의 속에서 인간의 사랑과 애정이 얼마나 변형되고 왜곡될 수 있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주는 이 주인공들은, 자본화의 극치를 달리고 있는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다.
작가는 죽음과 탄생을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성인 생명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있다. 자본의 욕망으로 빚어진 돈과 권력의 병균이 인간의 본성인 생명, 죽음과 탄생에까지 감염시킬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은 주인공들의 육체에 대한 인식과 육체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사랑과 죽음과 탄생의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과연, 그것이 죽음과 맞닿아 있더라도 환자는 자신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다 알아야 하는 것이 옳은가? 죽음과 육체에 대한 자신의 권리마저도 또한 권력으로 이어지는 세태에서 사랑과 생명에 대한 가치는 어디에 있는가?

또한 소설의 깊숙한 곳에 작가는 사랑의 두 양태를 보여주고 있다. 진실한 사랑과 실존적 사랑, 그것은 남녀간이나 모자간을 떠나 존재하는 양면성이다. 실존적 가능성을 완전히 도외시한 진실한 사랑은 가능할 것이며, 진실성을 배제한 실존적 사랑의 가치는 어디까지 인정되어져야 하는가. 작가는 이 양면적인 사랑을 하나로 세워둔다. 이 뒤틀린 세상의 진실과 위선은 늘 공존하고 있으며 그 속의 인간상은 위태롭다. 늘 어디로 쓰러질지 모르는 동전을 굴리듯이 불안하고 불완전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인간 군상의 모습에는, 거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이 내재한다.

저자소개

인간 내면의 허위의식을 술술 걷어내는 노련함... 글솜씨의 극치를 맛본듯

내가 아직 어렸을 때, 내게 문학에의 열병을 일으켰던 몇 권의 책 중에 나는 박완서 선생님의 처녀작인 『나목』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여고시절, 교과서 위에 겹쳐놓고 수업시간을 까먹으며 읽었던 그 책 중의 몇 대목은 지금도 가슴에 선명합니다. 나는 그 책의 주인공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고, 가슴이 철렁해지던 몇 군데의 대사도 기억합니다. 문학소녀였던 그때, 무엇이든 겁나는 것이 있었겠습니까. 나도 이와 같은 소설을 써야겠다고 한 밤중에 원고지를 펼쳐놓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그 후, 어찌 『나목』뿐이겠습니까. 박완서 선생님의 소설을 찾아 읽게 될 때마다 나는 예전의 기억뿐만이 아니라 다시 새로워지는 열병을 경험합니다. 그 느낌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간혹, 선생의 소설을 읽을 때, 나는 어느 사이 발가벗겨진 느낌 같은 것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누가 내 옷을 벗겼나. 누가 내 이웃과 내 지인들의 옷을 이렇게 말끔하게 벗겨놓고 태연스레 바라보고 있나. 선생의 최근작 『아주 오래된 농담』(실천문학)을 읽은 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허위의식 속에 매몰되어버린 진실이 있습니다. 그것을 찾아내는 일은 엄중하기보다는 농담과 같습니다. 
말하자면 농담이 되어버린 진실입니다. 농담의 표피를 한겹 한겹 걷어내고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내는 일... 그것은 나와 당신의 옷을 벗기는 일과 동일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신기하지요. 나 또한 나이 들어갈수록 벗어야할 옷이 겹겹이 늘었을 터인데도 그 옷이 벗겨져 내 알몸이 투명해지는 것이 이렇게 수월할 수가 없습니다. 나는 낯설게 나를 바라봅니다. 마치 내 가슴의 혈관까지 들여다보일 듯한 그 투명함이 낯설다 못해, 끝내는 엄숙합니다. 벗겨진 몸의 구석구석에 서늘한 바람이 이는 듯도 합니다. 

책의 표지에, 현기영 선생님께서 써놓으신 짧은 글이 있습니다. 연로함이 이토록 아름다울 수가 있을까. 이 책은 선생이 칠순의 연세에 내놓으신 글입니다. 이 책을 읽은 후, 나는 현기영 선생님의 말을 대신할 수 있는 글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___조선일보 책마을 김인숙(소설가) (2001년 2월 10일 토요일)